2016-08-12 | <난임휴직> 편안한 몸과 마음에 아기가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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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편안한 몸과 마음에 아기가 찾아옵니다. -난임 휴직
2008년경부터 질병 휴직의 일환으로 난임 휴직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주로 선생님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아 휴직을 2년으로 쓸 수 있으며, 여성 직원이 많은 은행권에서는 출산 휴가 중 1년을 난임 휴직으로 미리 끌어다 쓸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부 대기업에서도 난임 환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질병 휴직으로 일정 기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추세입니다.
40대 중반의 여성이 내원했습니다. 매우 성실해 보이는 분이셨지요. 그러나 눈빛이 흐릿하고 지쳐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환자는 양방 난임 병원 선생님 권유로 한약을 복용하고자 왔다고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임신 시도를 1년가량 했으나 결과가 없어 양방 난임 병원을 찾았고, 난소나이(AMH) 수치가 낮아서 바로 시험관 아기 시술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채취되는 난자의 개수가 1-2개로 적었고, 2회째에 난자는 2개가 채취되었는데, 의사 선생님 표현대로라면 난자가 ‘흐물거려’ 수정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실패했다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딱 2개월만 한약을 먹고 다시 와서 시험관 시술을 하라 했다고 합니다.
일단 한약을 복용하고 다시 오라고 한 양방 산부인과 선생님도 신기하고 반가웠지만, 딱 2개월을 정해준 것도 의아했습니다. 우리 한의학적으로는 임상에서 봤을 때 시험관 시술 전에 최소 3개월가량의 치료를 받는 것이 훨씬 시술 성공률을 높이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단호했습니다. 양방 의사 선생님이 시킨 대로 2개월만 치료를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낮은 AMH 수치는 나이에 비해서는 좋지 않기는 했지만, 1이 넘는 수치로, 임상에서는 일단 자연 임신이 가능한 수치임을 거듭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 수정부터가 안 되는 일을 경험해서 그런지 자연 임신의 가능성을 말하는 저를 황당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환자는 성실한 고위직 공무원이셨습니다. 교육 계통에 종사하시는 분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잠을 줄여가며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쳐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운동은 언제 하냐고 묻다 보니 아침 일찍 출근 전에는 어학 공부를, 퇴근 후에는 다른 자기 계발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임신이 되지 않는다. 지금 환자분은 너무 일만 하고 살아서 몸의 기혈(氣血)이 소진(消盡)된 상태다, 내 한 몸 살아가기도 힘든 상태인데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고 기를 여력(餘力)이 있겠냐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고, 휴식을 취하고, 공부보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이신데 진지하게 난임 휴직을 해보시라고 권했습니다.
사실 진료하다 보면, 고가(高價)의 치료비를 내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치료 받으러 온 환자에게 직장을 그만둬라, 휴직을 하라는 권고를 할 때 이게 과연 한의사로서 환자한테 할 소리인가 나도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려면 그 환자가 처한 근본적, 기본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약도, 침 치료 등의 한방 치료도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이 환자의 심신(心身)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임신에 중요하다고 판단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한의학적 치료에 앞서 그 환자가 처한 삶의 상황을 바꾸는, 생활을 개선하는 것을 권고하게 됩니다.
환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난임 휴직은 생각도 못했다, 교육 발전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솔직히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공익을 위해 본인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하는 공무원만 계신다면 우리나라 걱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환자분은 일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임신도 동시에 건강하게 할 상태는 아님을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지요. 환자는 언제나 늘 바쁜 모습으로 주로 야간 진료 시간을 이용하여 침 치료를 받고 한약을 2개월가량 드시다가 다시 양방 난임 클리닉으로 가셨습니다.
그 후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추석이 지난 늦가을, 초겨울 무렵이었습니다. 임신이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떻게 되신 것이냐? 그 때 한방 치료 이후 바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았는데 이전 시술 때보다 훨씬 질(質)이 좋은 난자가 많은 숫자로 채취되었고, 이식할 수 있는 상급의 수정란도 많이 만들어졌다고 했습니다. 수정란 이식은 하였으나 임신에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환자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지요. ‘아,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휴직을 해야겠다!’고요. 그 길로 난임 휴직을 신청하고 추석 연휴에 들어갔다 합니다.
그 즈음이 배란기였고, 환자의 배우자는 제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즉 부인의 난소 기능이 충분히 자연 임신도 가능하다는 말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한의사가 자연 임신도 가능하다고 하니 휴직도 했겠다, 노력해보자고 고무되어 시도를 자연스럽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연 임신으로 이어져 위태로웠던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며, 내 덕분이라고 감사 전화를 해왔습니다. 사실 좀 겸연쩍었다고 할까요.
한방 치료 이후 시술 성공의 목표는 실패했고 그 이후에 자연 임신하신 것인데도 제게 감사 인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건강한 남아를 출산하였고, 출산 후에 노산(老産)으로 인해 조리가 더디고 몸이 힘들어 산후 조리약을 드시러 내원하셨습니다.
황송하게도 떡을 한아름 맞춰 오셔서 병원 식구들과 나눠 먹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오신 애기 아버지는 원장님 덕분에, 제가 드린 ‘자연 임신도 가능하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시도한 것이 너무 잘 되었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다 하면 좋겠습니다.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아이도 낳고.. 하지만 동시에 다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특히 건강한 임신이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현재 생활이 여유롭고 편안하면 임신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이 일상에 허덕이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갈 상태에 있다면 결코 임신이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인위적으로라도 조성된 휴식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난임 휴직이 공무원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 직종으로도, 모든 일하고 있는 가임 여성으로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한국은 미래에 그런 날이 부득이하게 올 지도 모릅니다. 저출산은 오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본인이 난임 휴직을 쓸 수 있는 처지라면 적극적으로 휴직을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왜 나만 유난스럽게 직장도 포기하면서까지 아이 갖기를 노력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유감스럽지만 효율의 문제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휴직을 쓸 수 있는 것이 너무 다행이 아니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다른 휴직을 쓸 수 없는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혹은 휴직이 가능해서 썼다가도 이후의 고용의 불안전성 때문에, 쉬면서 임신을 시도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환자분들의 상황이 다 다를 것입니다. 일을 꼭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일을 못해서 스트레스가 더 가중되는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력이 된다면, 여건이 된다면 지금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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