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6 |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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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세요!
한의학에는 노일(勞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즉, 너무 과로해도 안 되고 너무 게으르게 늘어져도 병이 올 수 있다는 뜻이지요. 즉 언제나 적당한 활동과 쉼이 균형을 이룬 상태여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늘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야만 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시되어왔습니다.
잠을 자는 시간도 아껴야 하고, 놀고 싶어도 꾹 참고 공부하거나 자기 개발을 위해 다른 공부를 해야 하고 심지어 두 가지 직업으로 돈을 더 벌거나 재테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 풍토입니다.
그런데 이런 풍토 속에서는 누구도 건강을 위해 적절한 생활의 리듬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당연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힘듭니다.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잠을 줄여서라도, 휴식 시간을 줄여서라도, 식사 시간을 빼서라도 일, 일,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성인은 8시간은 수면을 취해야 하고, 야근은 가능한 해서는 안 되고, 한 시간 정도 책상에 앉아서 일을 했으면 5-10분은 휴식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유를 가질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것입니다.
38세에 결혼하여 39세가 된 여성이 내원하였습니다.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 즉 IT 업계에서 일하는 분이었지요. 마르고 한 눈에도 피곤해 보이는 것이 첫 인상이었습니다.
아직 결혼한 지 채 1년이 안된, 11개월 전에 결혼은 하고, 6개월 전부터 임신을 시도하였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그렇지만, 남편도 나이가 43세라 양방 난임 전문 병원에 가서 기본 불임 검사를 하였습니다.
호르몬 검사 상 난소 나이를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AMH 결과가 0.1ng/㎖, FSH는 26mIU/㎖으로 거의 폐경에 접어드는 단계로 나와서 병원에서 바로 시험관 시술이 급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배우자도 정액 검사 상 활동성이 저하되고, 기형정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환자는 시험관 시술이 급하다니 이에 놀라서 한방 병원으로 내원한 경우였습니다.
환자는 업무 스트레스가 많이 심하고, 30대 초·중반에 야근을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제가 왜 이렇게 나이보다 난소가 기능이 떨어졌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환자분께서 너무 열심히 일해서, 몸이 상하는 줄 모르고 너무 열심히 일해서 난소가 늙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을 때, 환자분께서 황당한 표정으로 “남들도 다들 이 정도는 일하고 사는 거 아니에요?” 라고 되물었던 순간이 너무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맘이 먹먹했지만, 일단 그렇지 않다고, 모두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살지도 않고, 남들이 그렇게 일해도 몸이 상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누구는 과로해도 난소가 늙지도 않고, 생식 기능이 보존 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고 업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로 인해 난소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휴직이 가능하면 휴직하고 임신을 준비하시라고 권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환자가 호소하는 주된 증상 자체가 허로상(虛勞傷)이었습니다. 쉽게 피로하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고, 늘상 졸리다고 했습니다. 얼굴도 파리하게 희었지만, 손발도 차고 어깨는 결리고 뭉치는 통증이 있고 얼굴 피부는 늘 상기(上氣)되고 붉고 피부에 뭐가 많이 나서 불편했습니다.
첫 진료에는 몸 상태를 파악하는 검사와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상담으로 끝냈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아직 임신 시도를 시작한지 6개월밖에 안되어서 아직 불임도 아닌데, 불임 여성들보다 난소기능저하 상태가 심각한 것이 실감하지 못했고, 양방의 임신을 위한 시술도 시도해보지 않아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많은 듯 했습니다.
환자는 한 달 정도 후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양방의 배란유도 임신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배란유도약물을 복용하고 왔기에 한방적으로 도움이 될 약을 쓰는 치료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배란유도가 성공하여 임신 하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후로 당분간 몇 개월은 한방 치료만 받기로 설득하고 약속하습니다. 그 달에는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 배란유도 없이 한약, 침, 뜸 등으로 한방 치료만 시행하였습니다. 요통(腰痛)은 지속되었지만, 다른 제반 컨디션은 호전된다고 환자가 느꼈고 치료는 그 해 10월 중순까지 2개월 여간 이어졌습니다.
이듬해 3월에 환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1월에 배란유도로 임신이 되었는데 계류 유산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유산 후 후유증을 예방하고 건강한 조리를 돕는 한약을 처방하였습니다.
비록 유산은 했지만, 환자는 낙심하지 않고, 다시 치료에 의지를 보였습니다. 다행히 5월 초까지는 휴직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후 환자는 꾸준히 치료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원하여 약침을 맞고 임신 준비를 위한 한약을 드시면서 다시 임신 시도가 가능한 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저하된 생식·난소 기능을 향상 시키는 보약을 드시던 중에, 생각보다는 조금 이르게 자연 임신이 되었습니다. 이전 유산도 하셨고, 노령(老齡)에, 약간의 출혈이 비치는 증상도 있어서 유산을 방지하고 건강하게 임신이 유지되도록 안태약(安胎藥)을 처방하였습니다.
그 이후의 소식은 환자분이 39주 만삭이실 때, 다른 난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어떤 카페에 글을 올려주신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41세의 노산 산모이지만 건강하게 임신을 유지하고 아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이 환자분은 일단 결혼이 늦은 것이 임신에 어려움을 겪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젊었을 때 몸을 살피지 못하고 너무도 성실히, 열심히 일한 것이 생식 기능의 저하를 가져왔던 경우였습니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모두가 적당히 일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임신, 출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어제도, 오늘도 꿈꾸지만, 일단 세상이 아직 안 변하면, 적어도 나는 그런 풍조에 희생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지요.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건강이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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