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4 | 임신은 선택의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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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안 낳고의 여부가 선택의 문제가 된 것은 피임이 가능해지고, 의학의 발달로 낙태 수술이 가능해 진 이후의 일입니다. 이전 시대에는 성교를 한 결과는 임신으로 이루어졌고, 임신은 중간에 유산, 조산이 일어나지 않으면 출산으로 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임약이 보급되고 임신이 되었어도 초기에 산부인과에서 소파수술을 통해서 인공유산이 가능해진 이후로는 임신을 미루거나 중단하는 일이 자의로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여성이 점차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고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게 되면서 결혼이 갖는 의미도 달라졌고, 결혼 시점도 점차 늦어졌습니다.
내원하는 환자에게 묻곤 합니다. “아이는 누가 원해서 갖고자 하는 건가요? 여성 본인이 원하는가, 아니면 배우자가 원해서인가, 혹은 부보님의 권고로 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의무처럼 임신을 시도하려는가?" 를 물어보게 됩니다.
난임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결국, 어쩌면 어찌 어찌해서 임신이 되었을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즉,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애기가 생기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원하지 않는 시기에 생긴 아기는 포기하고, 이제는 원하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하지 않아도 아이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낳아서 기르는 부모가 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갖은 애를 써도 잘 안 생기는 상황이라면 다시 한번 본인에게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이 아이를 내가 원해서 낳으려고 하는 것인가?’, ‘내가 아이를 낳으면 잘 키울 수 있을까?’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임신만 한다고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임신 이후 9개월간 임신을 잘 유지하고 또 출산, 육아과정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끝없는 모성의 발휘, 자기희생이 아니면 잘 기르는 엄마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내가 원하는 데로 자라준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태어나는 순간 아이는 나의 끊임없는 보살핌을 요구하지만, 그 아이는 나하고는 다른 별개의 한 인간입니다. 실제로 아기가 없는 미국의 한 작가는 ‘아이 없는 완전한 삶’도 있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진정으로 원해서 부모가 되어도 그 이후의 몇 십 년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솔직히 저를 포함해서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다지 자기희생이나 보살핌을 베푸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부모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고 보살핌을 받고 성인이 되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아마 부모가 되면 본인이 자식에서 이제 반대의 입장에서 자식을 돌봐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30대 중반의 부부가 왔습니다. 두분 다 훤칠하게 키도 크고 인물도 멋진 분들이었습니다. 2007년 3월에 결혼해서 2011년 9월에 내원했으니 난임 기간은 꽤 길었고, 부부관계의 횟수가 적었지만 특별한 피임은 없었습니다. 오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내용으로 진료를 하다 보니 다양한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즉 좀 보면 아, 어떤 분들이구나 대략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분들은 여느 분들과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남편이 좀 이상합니다. 어떻게 왜 오시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여수의 환자였던 분의 소개로 오게 된 것 까지는 좋은데... 양방 병원의 검사 결과지를 꺼내 놓으십니다.
남편은 원래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주변 어르신들도 걱정을 하시니, 그럼 정말 불임의 원인이 있나 두 분이 양방 불임 클리닉을 찾아갔다 했습니다.
여성은 양방에서 보기에 크게 특별한 원인이 없었고, 남자는 정액 검사 상 기형정자가 3%로, 당시 기준으로는 시험관을 그것도, 미세 수정(ICSI)이 필요한 경우로 진단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는데 양방에서 막상 불임 요인이 본인에게 있다고 하니, 그럼 한의학적으로도 정말 본인에게 난임의 원인이 있는가 검증을 받고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일단, 이 시점에서도 기가 막혔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대체 왜 아기가 안 갖고 싶은가? 물었습니다. 남자는 아이는 기생하는 존재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아이는 부모에게 기생하는 존재로 자신은 자신의 삶을 그렇게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픈 생각이 전혀 없답니다. 기가 더 콱 막혔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평정심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말이 세게 나갈 수 밖에 없었지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양방에서 원인 불명의 불임이라고 진단을 받고, 한방으로 내원했을 때 한의학적으로 보면 건강한 임신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는 경우도 무척이나 많다! 혹은 양방에서도, 한의학적으로도, 크게 특별한 원인이 없어도 아기가 생기지 않아 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가 숱하게 많다! 임신은 수 만가지 수천가지 요인과 과정이 착착착 잘 진행하고 영향을 미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본인은 정액에서 100마리 중에 수정이 가능한 정자가 3마리밖에 없다고 하는데, 왜 본인이 불임이냐고 나한테 와서 검증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부모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진심으로 원해도 잘 안 생기는데 생길테면 생겨라도 아니고, 부모 노릇을 할 의향이 전혀 없는데 아이가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 되물었습니다.
후에 물어 안 사실이지만, 그 남편분은 본인의 아버지도 크게 자식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지는 않아서 본인의 힘으로 스스로 자수성가한 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단은 그날 한방 검사에 관한 설명과 상담을 받고 돌아가시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 몸의 불균형, 장부 기능의 저하가 있어도 왜 치료를 받으시냐? 본인의 생각이 바뀌면 그 때 오시라 돌려보냈습니다.
환자들은 2주 후에 다시 내원하였습니다. 노력을 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은 상기(上氣)되어 얼굴이 붉었고, 가끔 요통(腰痛)이 있는 전형적인 소양인(少陽人)이었습니다. 과거 폐결핵을 앓아 치료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먼저 해독(解毒)을 시키고 폐신(肺腎)기능을 다스리는 한약을 투여한 후로는 생식기능을 강화하여 건강한 정자가 생성되도록 돕는 한약을 꾸준히 투여하였습니다. 치료한 지 3개월여가 지나서 임신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자연 임신을 한 것이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정액 검사를 그간 받아 치료 전후의 변화 상황을 미처 확인 못했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이전에 진료 시작할 때, 3개월 한방 치료 후에는 꼭 정액 검사를 다시 해서 정자 상태가 향상되었는지 확인 할 것이다, 라고 했었는데 정액 검사로 호전 여부를 확인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그 것은 알아서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진료를 하면서 언제나 늘 깨닫는 것이지만 정말이지 인간은 너무나 다양하게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처한 상황, 혹은 그를 둘러싼 환경, 가족 관계도 너무 다릅니다. 팔자(八字)라고 해야하나...인생이 너무도 다양합니다. 환자의 배경과 본인이 평범하면 몸만 보고 한의학적으로 진료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환자가 살아온 이력에서 형성된 생각이 너무도 특이하여 한의사이기 이전에 한 개인적인 인간으로 동의하기가 너무도 힘들면 진료가 시작되기 어렵습니다.
임신이 선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하기로 선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본인이 임신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반드시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든 양방 의학의 기술을 빌어서든 임신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임신하고자 본원을 찾아주십니다. 선택을 하셨으면 불안해하지 마시고, 임신을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 여정을 보내시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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