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의 최적 연령
오래전 일입니다. 난임을 진료하는 한의사로서 큰 충격을 받은 일이라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내원한 환자 부부였습니다. 한 눈에 보아도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점잖아 보이시는 부부였지요. 남편의 얼굴은 벌써 반백(半白)의 머리카락과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가에는 주름살이 보기 좋게 자리 잡았습니다. 부인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날카로운 인상에 눈빛이 강합니다. 두 사람 모두 50에 가까운 40대 후반의 연령입니다.
어찌 해서 오셨냐 하니, 이제부터 임신을 하려고 하는데 생리 주기가 이상하게 틀어져서 신경이 쓰여 왔다고 합니다. 아니 폐경에 가까운 나이에 이제부터 임신 시도를 하려고 하다니... 우선 생리 주기에 변화가 온 것은 난소 기능 저하로 배란이 불규칙해진, 갱년기 증후군이 시작된 것일 수 있음을 설명하고 난소 기능을 포함한 호르몬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진료를 할 때 환자는 본인의 40대 후반이라는 연령이 폐경이 올 수 있는 나이, 여성의 생식기능이 거의 끝나갈 수 있는 나이임을 설명을 듣는데 강한 의구심과 반발을 표현하였습니다. “아직 내 육신(肉身)은 충분히 젊은데 무슨 소리냐!”고 하였습니다. 환자가 너무 인식(insight)이 없기에 우선 다른 권위 있는 양방 불임 클리닉에도 가셔서 본인 상황을 점검하실 것도 권고 드렸습니다. 호르몬 검사 결과는 역시, 폐경을 앞둔 갱년기로 접어들어 난소 기능 저하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습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시행하기에도 힘든 상태였지요.
환자분은 결혼하신지 거의 20년이 넘었다고 했습니다. 20대 결혼 적정기에 결혼을 하였으나 아내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고시를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임신을 원하였으나, 아내가 본인 인생의 꿈을 위해 지금은 임신 시도를 할 수 없다고 하여, 이해하고 이제껏 기다려온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기다린 것이었지요. 생리를 하는 한 임신은 언제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함이 너무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수업 시간을 정확히 기억합니다. 예과 1학년 때 교양 필수 과목으로 생물학을 수강했습니다. 일명 ‘호랑이책’으로 원서를 번역한 두꺼운 생물학책을 교재로 한 수업이었습니다. 너무나 스마트해서 동경스러운 여자 교수님 수업이었는데, ‘생식 생물학 분야에서 인간 여성의 생식 최적 연령은 26세’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나도 미래의 그 나이에 결혼을 하지 않을 것 같고, 더구나 임신은 생각지도 않을 시점인데, 그 26세라는 나이가 생식 기능이 최고 정점(peak)이라니, 경악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최고 정점(peak)이라는 것은 그 정점 이후로는 감소하는 추세로 진입하고, 더구나 그 감소 속도는 35세 이후로 가파르게 빨라진다는 것을 이후 한의학, 양방 산부인과 서적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에는
‘여자는 7살이 되면 신기(腎氣)가 왕성해져서 이를 갈고 머리털이 잘 자란다. 14살이 되면 천계(天癸)가 오고 임맥(任脈)이 통하며 태충맥(太衝脈)이 충실해져서 월경을 때에 맞추어 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게 된다. 21살이 되면 신기(腎氣)가 완전해져서 마지막 어금니가 나오며 키가 다 자란다. 28살이 되면 뼈와 근육이 단단해지고 털이 완전히 자라며 기골이 장대해진다. 35살이 되면 양명맥(陽明脈)이 약해져서 얼굴이 초췌하기 시작하고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한다. 42살이 되면 삼양맥(三陽脈)이 위에서 쇠약해져서 얼굴이 완전히 초췌하고 머리털이 희기 시작한다. 49살이 되면 임맥(任脈)이 허해지고 태충맥(太衝脈)도 쇠약해져 천계(天癸)가 약해지면서 월경이 없어지고 몸이 약해지므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고 씌여 있습니다.
즉 21-28세 가량이 임신과 출산을 하기 위한 최적의 연령대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015년 기준으로(2016년 4월 통계청 자료) 평균 결혼 나이가 남자 32.6세, 여성은 30.0세라고 합니다. 즉 최적 생식 연령대를 훌쩍 넘는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있으니 임신이야 당연히 그 이후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난임이 점차 증가 일로에 있는 것이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저도 30이 넘은 나이에 결혼과 첫 출산을 했습니다. 하지만 임신 가능 연령에 대한 인식의 유무(有無)가 개인에게 있어서는 큰 차이를 낳습니다. 적어도 결혼과 출산을 인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이슈로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건강한 임신과 출산이 유한(有限)하다는,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 인생 계획에서 우선 순위가 좀 더 다르게 놓여질 것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한의사가 되려고 수업을 받는 예과 1학년 때, 수업 내용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도 있었고, 결혼 전부터 불임 환자들을 봐와서 이 문제에 대해 유보를 하기보다는, 결혼 이후에 내가 하고 싶은 사항 중에서 상대적인 우선순위를 임신, 출산에 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누구나 3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공부하고 경력을 쌓고 젊음을 즐깁니다. 30이 넘어 결혼을 하고 결혼 이후에는 1-2년 신혼을 즐기는 것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러는 중에 생식 기능은 감퇴되고 있는 것입니다. 초산이 늦어지니 또 다른 문제가 연쇄적으로 생깁니다. 바로 유산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의 자연유산율은 22.1%로, 2년 연속 증가 추세를 보였습니다. 연령별로는 40대 이상 임신부의 유산율이 52.5%로 가장 높았으며 30대의 유산율 역시 20.6%로 2012년에 비해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조사에서 유의할 점은 20·30대의 유산율이 전년대비 크게 증가한 것으로,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의 건강 수준이 악화되고 있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신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건강하게 출산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게 아무 때나 쉽게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즉 최적의 연령대가 언제인가? 에 대해 알면, 그 시기를 지나 결혼을 하게 되고, 임신 출산을 할 때, 내가 순조롭게 잘 되면 너무 감사한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즉,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여성이라면 최적의 시기가 있고, 그 시기가 지나서 임신을 하기로 선택했거나, 아니면 상황 상 그러하게 되었다면, 혹여나 맘처럼 쉽지 않아도 왜 그럴까? 너무도 애타고 분통터지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나이가 그러하면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만 해도 현재의 임신을 생각보다 오래 기다리고 있는 정황이 잘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그럼 무엇을 더 노력해봐야 할까? 에 대한 접근이 자연스럽고 적극적일 수 있습니다.
임신·출산의 최적 시점에 대한 지식이 한의학이나 의학이나, 생물학을 배우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알려진다면, 여성은 자신의 인생 계획을 세우거나 진로 결정을 할 때 적어도 염두 해 볼 수 도 있을 것이고, 남성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하나의 사항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력할 만한 상황이라는 것을 납득해야 노력하고 싶어집니다. 난임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던, 남성에게 있던, 원인 불명의 난임이든, 어떤 기능적, 기질적 원인이 있던 간에 어차피 최적의 시기가 지나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그 자체로도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든 의료적 치료가 필요하고, 본인 스스로 좀 더 건강하게 지내다보면 결실이 이루어지지요.
결국은, 건강하게 임신, 출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아무 때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혼만 한다고 아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야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렇게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것이 ‘기적’과도 같음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됩니다.
진료실에서, 나이가 많은, 결혼이 늦은 40이 넘어 결혼을 한 분들이 “결혼만 하면 바로 임신이 될 줄 알았어요!”라고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란 설명이나 지식을 한 번도 접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지만,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설득을 위해 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건강한 임신을 희망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2017년 올 해에는 꼭 좋은 소식이 있기를 온 맘 모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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