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3 | 아들을 낳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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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
21세기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아들을 낳는 한약이 따로 있냐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내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딸만 셋 있습니다. 저 자신도 딸만 넷 있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자랄 때도 애가 넷 있는 것은 자식이 많은 편에 속해서 특이한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란성 쌍둥이로 둘째, 셋째로 태어났기에, 그리고 5살 터울의 막내 동생이 있기에 우리 집에 우연히 아이가 많아진거지, 부모님이 아들을 원해서 아들을 낳을 때까지 낳은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보님께서 “딸이라고 무엇을 하면 안 된다,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키우시지 않으셨기에, 여자아이로 살아가는 것에 힘든 점은 정말이지 거의 못 느꼈습니다. 오히려 남녀 공학 중학교에 진학하니까, 중 2때 였나...... 남자 담임선생님께서 무조건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가 한다고 공표하셨을 때, 맘속으로 심한 저항감을 느낀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후에는 여고를 배정받아 다녔고, 한의대에 갔더니 그 당시만 해도 여학생이 극소수라 소수자인 여학생으로서 대학 생활하는 것이 뭔가 불편하고 부조리하다고 느꼈습니다. 한의학이라는 것이 음양관(陰陽觀)이라는 동양 철학에 기초하다보니, 흔히 하는 말로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 양은 태양으로, 일반적으로 표상되고, 음은 대지(大地), 땅으로 비유할 수 있어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렇게 말들을 하곤 했는데, 이 뜻은 남자가 여성보다 존귀하다, 주체적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여자는 대지처럼 생명을 잉태하고 받아들여 키우는 생물학적 특성적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음양관을 잘못 이해하는 절대 다수의 남학생들과 당시 투쟁!(-한약분쟁을 위해 전국의 한의대생들은 유급을 불사하고 데모를 했습니다.)을 해야만 했던 한의대의 시대적 특성 상 여학생은 대부분 음적(陰的)인 성향을 지니고, 여학생으로서 대다수가 성실하게 공부에 몰두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아무튼 저도 살아보니, 다행히 우리나라가 여학생이 학교를 다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총을 맞는 파키스탄도 아니고(-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예가 있습니다), 제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이런 아랍 문명권 국가에서 살지도 않았지만, 여자로서 살아보니, 확실히 여자여서 힘들고, 여자여서 똑같을 일을 해도 남자보다 더 몇 배 노력해야 하고, 여자라서 결혼 후에도 가사와 양육의 부담이 더 큰 것이 현실임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한 여성이 배우자와 함께 내원했습니다. 아들을 낳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과력이 좀 희한합니다. 일단, 첫아이로는 딸이 있고, 그 이후에 16주경에 인공유산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임신이 되지 않아 속발성 난임으로 판단하고, 남편이 정액 검사를 해보니 자연 임신이 힘들 정도로 정자 활동성이 떨어지고 기형 정자가 많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두 번 다 자연 임신이 된 것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합니다. 그럼, 16주경에는 왜 유산을 선택했는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아내가 서슴치 않고, “딸이어서!” 유산 시켰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숨이 막혔습니다.
기본적으로 임신이 어려워 그 과정을 도와 치료하는 한의사로서, 환자가 임신이 되었는데, 그 생명을 포기한 이유가 단지 “딸”이라는 답을 듣고 나니 정말이지 만정이 떨어진다고 할까요. 그 여자 환자를 더 이상 진료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직도 딸이라는 이유로 이 땅에서 많은 생명이 버려지고 있는 것이라니...너무하지 않습니까? 본인도 여자인데 말입니다.
미국에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딸 둘을 낳은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딸 둘은 자연 임신으로 제왕절개를 해서 낳았다고 합니다. 시댁이, 남편이 아들을 원해서, 아들을 골라서 낳을 수 있는 시험관아기 시술이 허용된 미국의 주(州)를 선택하여 그곳에서 시술을 했습니다. 아들인 수정란을 몇 개 냉동해서 보관해두고, 그 착상을 돕는 한방 치료를 위해 내원했다고 했습니다.
자궁 근종이 있어서 처녀 때부터 생리통이 극심해서 치료했던 여자 환자가 결혼을 하고 첫 딸을 낳고, 그 이후에 둘째를 임신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잘 안 들어서는 것 같고, 아들도 낳고 싶어서 배우자와 함께 내원하였습니다. 아내는 딸 넷 중에 넷째로 태어나 좋은 집안에 멋진 남편에게 결혼도 하고, 직업도 좋고 씩씩하게 일도 잘 하는 커리어우먼이었습니다. 그런데 딸만 넷이었는데, 그 언니들이 셋 다 시집을 가서 다 딸만 낳았다고, 그게 정말이지 너무 압박으로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꼭 아들을 낳고 싶다고, 남들은 다 있는 아들(-남들이 다 아들을 가진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인 저도 아들이 없는데 말입니다)이 왜 자기는 없냐고, 그럴 수 없다고 아들을 꼭 낳고 싶다고 했습니다. 일단 건강한 임신을 위해 부부가 함께 치료하여,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임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산이 되어서 속이 상했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되었을까, 환자가 만삭의 몸으로 다시 내원하였습니다. 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에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우리 환자는 울상입니다. “선생님, 또 딸이에요! 정말 저는 너무 속상해요. 왜 저는 아들이 없는거에요. 너무 속상해서 눈물만 나와요!” 환자가 엉엉 웁니다. 아이구, 이를 어째요. 또 딸이면 어때요. 유산 후에 건강하게 찾아와 준 아이가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워요. 그러지마요. 아기가 들어요. “듣던 말던, 저는 너무 속이 상해요” 엉엉 웁니다.
아들도 있고 딸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지금보다 한 세대 전의 여성들까지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임신 출산을 반복했지 않겠습니까.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임신을 위한 치료를 논한 부분의 제목은 구사(求嗣)문입니다. 즉, 대를 잇는 방도를 적었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서의 난임 해결은 아들을 낳는 것이었지요. 아직 둘 밖에 안 낳았으니, 정히 아들을 원하면 순리대로 낳을 때까지 낳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저는, 한의사로서는 듭니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아 기르냐?’고 되묻는다면, ‘다른 사람들은 아들을 못 낳고 살아가는 인생을 선택한 거’라고. ‘그 상황이 안 받아들여지면, 어떻하냐, 낳을 때까지 낳아야지요.’ 라고 저는 대답할 겁니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생명윤리법으로 아들과 딸을 가려 낳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은 불법입니다. 불법이라고 해 놓은 것이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아들이 필요하면 돈을 들여 첨단 과학을 이용하여 미국이나 기타 성(性)을 감별하여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주는 나라에 가서 시술을 하라고 저는 권고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인간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서 그렇습니다.
여자로 사는 것이 더 좋은 세상이라면, 아니 더 좋지는 않아도 남자로 살아가는 것과 동등하거나 비슷만 해도 이렇게 여자인 엄마가 여자아이를 거부하고 아들을 낳고 싶을까요? 저는 세상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들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 더 이롭고 낫다고 생각하니, 그 좋은 존재를 아들로 낳아서 그 어미로서 충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딸 만 셋 있는 딸부자 엄마입니다. 딸 넷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우리 언니들, 동생은 다 골고루 딸, 아들을 두었지만, 저만 딸을 셋 낳았습니다. 남편이 아들을 원했지만, 늦둥이로 찾아온 생명은 이쁜 딸이었고, 저는 딱 하루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원했는데, 그 원을 이루어주지 못해 유감이었고, 이미 딸 둘은 있으니 아들이라면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었고 이후에 시어머니가 되어보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하늘이 주신 생명은 제게는 이쁜 딸들이었고, 저는 딸들을 소중하고 잘 키워내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환자들은……, 이제는 좀 더 다른 입장에서 이해하고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을 낳게 하는 한약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임신에 있어서도 한의학에서는 음양(陰陽)의 기운이 작동되니, 양기(陽氣)가 승(昇)하는 시(時)에 시도를 하도록 하고, 남성 배우자의 양기(陽氣)를 북돋우는 치료를 합니다. 그리고 임신의 주체인 여성의 몸과 마음이 평안(平安)해 지도록 치료를 하는 것이 다입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오리진Origins』이라는 책을 보면, 아들과 딸을 낳은 여성들을 관찰해보니 딸을 낳은 여성들이 보다 신체적, 육체적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더라고 합니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직면한 임신부들은 체내 호르몬 변화로 약한 태아를 자연유산하게 되는데, 이 경우 희생자는 대개 여아보다 약한 남아라고 합니다. 이는 인류가 종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으로, 어려운 시절 약한 남성은 살아남아서 자식까지 생산할 확률이 적은 반면, 여성은 대를 이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즉, 약간 비약을 하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면 아무래도 생존 확률이 높은 여아가 착상되어 출산될 수 있으니, 가급적 가능한 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진심으로 강요되거나 억지로가 아니라, 엄마가 될 본인이 진정으로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른 맥락으로 우리 난임 환자들이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자로서 임신, 출산에 어려움을 겪은 본인이 딸을 낳으면, 그 딸이 혹시 나중에 시집을 가서 그러면 어떻하나......괜히 마음고생을 할까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아무래도 임신의 주체가 여성이다 보니, 딸을 낳으면 또 친정 엄마로써 본인의 딸이 무사히 출산을 마쳐야 맘이 놓일 것 아니겠습니까.
딸이던, 아들이던,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길러보고자 하시는 소망을 가진 분들이 더욱 많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간혹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 대해 편견이 있거나, 도덕적 판단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임신을 원하면 건강한 아이를, 아들을 원하면 아들을, 또 최근 또 다른 대세인 딸을 원하면 딸을 낳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원하는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딸이라서 생명이 포기되지는 않았으면, 딸로 살아가거나 딸을 낳은 인생이 아쉽고 불쌍한 인생이 되는 세상이 더 이상 존속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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